본문 바로가기
유용한

[본문스크랩] 중세 국어의 표기법

by 심자한 2010. 3. 7.

중세 국어의 표기법

 

  중세국어에서의 표기법은 크게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로, 연철은 이어적기라고도 하는데 오늘날 국어처럼 표의주의(형태주의)식 표기를 하지 아니하고 표음주의로 즉, 소리나는 대로 적었다. 실사(의미부)의 끝받침을 모음으로 시작되는 허사(형태부)의 초성으로 내려적었다. 표기법에서 효율적인 방법은 형태주의 표기법이다. 의미를 나타내는 그림이 더 효율적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말 이'(형태주의 표기) → '말 미'(표음주의 표기)의 경우이다.
  둘째, 분철이다. 분철은 끊어적기라고도 하며, 기본적인 형태를 살려 표기하는 것으로 오늘날 표기법인 표의주의에 따른 것이다. 체언과 조사(국+을), 어간과 어미(먹+어), 어원이 확실한 파생어(얼+음)에서처럼 끊어 적기를 하는 것이다. 즉, 연철표기법이 상대적으로 표음적인 데 비해 이 분철표기법은 상대적으로 형태소를 밝혀 적는 표기법인 것이다. 예를 들면 연철에서는 '사라미 바블 머겄다' 라면 분철에서는 '사람+이 밥+을 먹+었+다' 라고 할 수 있다. 16세기 말에 분철표기가 등장하여 특수한 경우에는 이 분철 표기를 했다.  자음이 탈락한 자리(ㄹ자음 밑에서 ㄱ이 탈락한 곳)로 '  어늘(<  거늘), 믈와(<믈과), 몰애(<몰개(모래 砂)' 등을 들 수 있고,
 ㄹ받침 밑에서  'ㅸ'이 '오/우'로 변한 경우로 '글 >글왈, 갈 (竝)> 와,   (밟을 踏)> 와, 열 (엷을 박薄)>열운' 등을 들 수 있다. ㄹ받침으로 끝난 어간이 사동보조어간(오/우, 이)이나 피동보조어간(이)를 만날 때, '일우다(成), 어울워(合), 살와(살+오+아), 일위더니,  이다(飛), 들이다(聞)' 등을 들 수 있다.  특수곡용어 ' ' ' (르)'가 곡용한 경우로 아 (弟),  이,   ,  이라, 노 (노루 장獐), 놀이(노루가), 놀 , 놀이라, 시 (시루), 실을(시루를) 등 .  ' /르' 어간에 모음의 어미가 이어질 때, 다 아>달아, 니르어>닐어,   아> 아 , 오 이샤>올이샤 등을 들 수 있다.
  셋째, 혼철이다. 혼철은 혼란된 표기·과도기적 표기라고도 한다. 우리말의 표기는 15세기의 연출 위주의 표기에서 차츰 분철 표기로 발전하여 왔다. 그러나 연철도 분철도 아닌 과도기적 표기가 16세기에 나타나 17·18세기에 이르기까지 나타났다. 이러한 혼철이 나타나는 특성과 예는 다음과 같다.
 체언과 조사가 연결될 때 체언의 끝소리가 겹쳐서 표기되었다. '옷새, 님믈, 님미, 술리'  어간에 어미가 연결될 때 어간의 끝소리가 겹쳐서 표기되었다. '깁퍼, 뭇친'   ㅍ을 ㅂ과ㅎ으로 나누어 표기했다. '놉흘시고, 년닙희, 압희는'
  넷째, 한자음 표기이다. 한자음 표기의 대표적인 예는 동국정운식 한자음 표기가 되지만, 이외에 월인천강지곡의 한자음이나 현실적 한자음 표기가 있다.
  동국정운식 한자음. 훈민정음은 우리말을 쉽게 적는다는 목적 이외에도 당시의 한자음을 중국의 원음에 가깝게 고쳐야 한다고 생각하고 중국 음운학의 기본이 되는 <홍무정운>의 음운체계를 바탕으로 하여 세종 30년 <동국정운>을 간행하여 우리나라 한자음의 표준으로 삼았다. 따라서 세종과 세조 때 나온 석보상절, 월인천강지곡, 훈민정음언해본의 한자음 표기는 이를 표준으로 삼았는데 이를 동국정운식 한자음이라 한다. 이 한자음은 현실에 통용되던 한자음과는 거리가 먼 현실적 한자음이므로 세조 이후는 쓰이지 않았다. 첫째 중국의 원음에 가까운 표기로 'ㄲㄸㅃㅆㅉㆅㆆㅿ'등을 초성에 사용하는 것으로   覃땀步뽕邪썅洪  등을 들 수 있다. 둘째, 초성, 중성, 종성을 반드시 갖춘다. 즉, 종성의 받침이 없으면 ㅇ,ㅱ을 붙이는 것으로 虛헝斗 步뽕票 
셋째, ㄹ받침으로 끝난 한자어에는 반드시 ㆆ을 붙인다. 이는 이영보래(以影補來)의 일종으로 戌 佛 日 
  월인천강지곡의 한자음 표기. 월인천강지곡은 다른 문헌과는 달리 한자음을 먼저 표기하고 뒤에 한자를 썼으며, 동국정운식 한자음으로 표기했으나 종성이 없는 경우에는 ㅇ,ㅱ을 붙여 쓰지 않았다. 예를 들어 …懇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