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진건 <술 권하는 사회>
작품 감상의 길라잡이
1921년 <개벽>에 발표된 단편소설. 일제하 조선의 지식 청년이 절망으로 인하여 술을 벗 삼게 되고 주정꾼으로 전락하는데, 그 책임을 '술 권하는 사회'에 있다고 토로한다. 더욱이 아내의 이해도 얻지 못한다는 데에 이 소설의 페이소스(pathos 애절감, 비애감)가 있다.
현진건의 데뷔작은 1920년에 발표된 <희생화(犧牲花)>이지만, 그가 작가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된 것은 다음해에 발표한 <빈처(貧妻)>와 <술 권하는 사회>부터였다. <빈처>에서 남편인 '나'는 공부를 하러 중국, 일본으로 갔다가 방랑의 세월만 보낸 후 무위(無爲)하게 귀국한다. <술 권하는 사회>의 주인공 남편 역시 일본에서 공부하고 빈손으로 돌아온다. 작가 현진건은 상해 호강 대학(扈江大學)에서 독문학을 공부하고 귀국한 다음 이 소설들을 지었는데, 작가의 직접적 체험이 짙게 배어 있는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겠다.
이 작품은 "그 몹쓸 사회가 왜 술을 권하는고!" 하는 아내의 말로 끝을 맺고 있다. 이 말은 남편이 아내를 버리고 나가는 이유를 압축적으로 표현해 낸 것이며, 아내의 절망과 지적 수준을 드러내고 있다. 지식인 남편은 봉건적 사고를 지닌 무지(無知)한 아내를 이해시키는데도 실패하고 사회에도 적응해 나가지 못한다. 모순과 부조리를 인식하기는 하지만 무엇이 그 같은 부조리를 만드는 실질적 힘인지에 대해서는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저 모순과 부조리에 저항하는 방식으로 울분을 터뜨리거나 쉽게 좌절하고 마는 인물이다. 아내는 그러한 남편의 고통을 분담하려고 가난도 참고 견디지만, "사회가 술을 권한다."는 남편의 말에 '사회'를 '요릿집 이름'으로 연상해 내는 무지한 여인이다. 어떤 면에서 이러한 아내의 무지가 남편에게 또 한 차례 술을 권하는지도 모른다.
결국, 이 작품에서 작가가 표현하려고 한 것은 시대 환경 속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지식인의 고뇌이다. <빈처(貧妻)>가 가정을 중심으로 해서 그 고뇌를 그려냈다면, 이 소설은 가정을 중심으로 하되 사회적인 것이 원인임을 간접적으로 나타냈다는 점에서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투시(透視)하려고 하는 작가 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 등장인물 ◉
(1) 남편 : 경제적으로 몹시 무능한 지식인. 일제 치하의 사회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아내에게서도 이해 받지 못해 심한 갈등과 방황을 겪는 인물.
(2) 아내 : 결혼 후 7-8년간이나 늘 혼자서 가난을 참고 견디지만, 무지(無知)로 인해 지식인인 남편을 이해하지 못해 괴로워하는 평범한 아내.
현진건 <술 권하는 사회> -2-
▶ 줄거리
아내는 남편을 기다린다. 남편은 중학을 마치고 자기와 결혼을 하자마자 곧바로 동경에 가 대학까지 마치고 돌아왔다. 남편이 돌아오면 부유하게 살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과는 반대로 남편은 여러 달이 지나도 돈벌이를 하기는커녕 오히려 집에 있는 돈만 쓰고 걸핏하면 화만 냈다.
늦도록 남편이 돌아오지 않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데, 새벽 두 시경 행랑할멈이 부르는 소리에 나가 보니 남편은 만취(滿醉)가 되어 걸음도 제대로 걷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 돌아왔다. 그래도 남편은 행랑할멈의 도움을 거절하며 간신히 방에 들어와 옷도 벗지 못하고 벽에 기대어 쓰러진다. 아내는 남편의 옷을 벗기어 자리에 뉘려 하나 옷이 잘 벗겨지지 않자, 짜증을 내며 남편에게 이토록 술을 권한 사람들을 탓한다.
남편은 쓸쓸하게 웃으며, 현 사회가 유위 유망(有爲有望)한 나의 머리를 마비시키지 않으면 안 되게 하므로 이것저것을 잊기 위해 술을 마시는 것이니, 내게 술을 권하는 것은 화증(火症)도 하이칼라도 아니고 현 조선 사회라고 말한다. 그리고 남편은 조선의 현실을 비판하며, 그런 사회에서 자신이 할 것은 주정꾼 노릇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아내는 남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남편은 아내의 무지(無知)에 답답하다고 하면서 아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집을 나가 버린다. 아내는 절망적 어조로 이렇게 중얼거린다.
―"그 몹쓸 사회가 왜 술을 권하는고!"
▦ 내용 고갱이 ▦
1. 갈래 : 단편소설
2. 배경 : 일제 시대(1920년대)의 도심지
3. 시점 : 3인칭 작가 관찰자 시점[으로 주로 아내의 시점으로 사건이 전개되고 있다. 이로 인해 남편의 사회에 대한 불만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못하고 선언적(宣言的 어떤 방침이나 의견, 주장 따위를 외부에 표명하는 것.) 형식에 그치고 만다.]
4. 경향 : 사실주의
(1) 시대적 상황 때문에 일어나는 문제를 사회로부터 개인에게로 축소시키고 있음.
(2) 일제 치하의 숨 막히고 절망적인 상태에 놓인 지식인의 불안을 사실적으로 그림.
5. 출전 : 개벽(1921)
◎ 구성 돋보기 ◎
1. 발단 : 바느질을 하며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
2. 전개 : 과거에 대한 회상과 초조한 심정의 아내.
3. 위기 : 만취되어 돌아온 남편.
4. 절정 : 술을 먹는 이유에 대한 남편의 변명과 그것을 이해할 수 없는 아내.
5. 결말 : 집을 나가 버리는 남편.
현진건 <술 권하는 사회> -3-
▣ 어휘 깁고 더하기 ▣
홧증(火:症) : 화증. 걸핏하면 화를 왈칵 내는 증세.
하이칼라(high+coollar) : 취향(趣向)이 새롭거나 서양식 유행을 따르는 일.
고소(苦笑) : 쓴웃음.
유위유망(有爲有望) : 능력도 있고 발전할 전망(가능성)도 있음. 여기서는 계획하는 바나 소망하는 바가 있음.
물큰물큰한 : 냄새가 한꺼번에 확 풍기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무슨 벽 : 아내와 남편 사이에는 지식의 차이, 현실관의 차이, 인생관 의 차이 등이 가로막혀 있다. 아내의 입장에서 이는 좀처럼 부수기 힘든 ‘벽’으로 느껴진다. (문맥) 의사소통의 단절.
팔자가 좋아서 조선에~얻어먹을 수 있나······. : 자신이 처한 현실에 절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말한 것은 반어적인 진술이다. 이는 상대방과 말다툼하면서 ‘잘 먹고 잘 살아라.’라고 말하는 경우와 같다.
어찌하였든 딴 나라에는~요리집 이름이어니 한다. : 아내의 무지가 단적으로 드러남.
재우친다 : 빨리 몰아치거나 재촉한다.
분자(分子) : 어떤 집단을 이루는 각각의 구성원.
회(會) : 여럿이 모이는 일.
☺··· 주제는 바로 ☞ 일제 강점하의 부조리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가정에서도 이해받지 못하는 지식인의 좌절과 고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