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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나는

[본문스크랩] [소설] 최인훈 <광장(廣場)>

by 심자한 2010. 3. 7.
 

최인훈 <광장(廣場)>


 󰏊 작품 감상의 길라잡이 󰏊

  이 작품은 1960년에 발표된 소설로서, 광복 직후 남북이 분단된 상황 속에서 고뇌하며 방황하는 지식인 청년의 삶의 모습을 추적한 작품이다. 작가는 주인공 이명훈을 통해 역사와 민족의 문제, 그리고 이념과 진정한 인간적 삶의 방향 등에 대한 진지한 문학적 탐구를 보여 주고 있다.

  이 소설이 쓰인 당시는 4월 혁명이 성공을 거두고 새로운 민주화가 시도되던 때로서, 이 작품은 자유당 권하에서 금기시되었던 남북문제를 어느 정도 객관화하여 접근할 수 있었음을 보여 준다. 이 작품에서 남북 분단의 이데올로기 문제는 광장과 밀실이라는 인간 존재의 보편적인 문제와 연결되어 다루어지고 있는데, 중요한 것은 밀실과 광장의 통일이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문제임을 말해 주고 있다는 점이다.


  이 작품은 두 가지 면에서 의미가 있다. 하나는 남북 분단의 문제를 정면에서 다룬 본격적인 장편이라는 것이다. 이 문제를 다룰 수 있었던 것은 4·19 때문이었다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4·19에 의해 남북 분단을 정면으로 다룰 수 없다는 금기가 깨졌다는 것이다. 작자는 이명준이 남한도 북한도 선택하지 않고 제3의 중립국을 택한다는 것은 현실에서의 패배이며 죽음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조국의 현실을 벗어난 제3의 길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개인주의적이고 관념적인 지식인의 망명이 죽음으로 끝나는 것은 민족의 현실에 대한 투철한 인식이 없이 남북한을 단순히 양자택일적인 것으로만 인식한 결과이다. 둘째, 이 작품이 남북한의 문제를 밀실과 광장이라는 인간의 본래적인 존재의 문제와 연결시켜 놓았다는 점이다. 인간에겐 누구나 자기의 고유의 밀실이 필요하면서, 동시에 타인과 교섭하면서 공동체적 삶을 살 광장이 필요한 법이다. 그런데 주인공은 진정한 시민적 광장에 대한 진실한 추구보다는 자신의 관념적이고 폐쇄된 밀실에 너무 기울어져 있다.


  이 소설은 인간이 사회적 활동을 영위하는 공간인 '광장'과 개인적인 공간이라는 의미의 '밀실'이라는 두 개념을 사용하여, 남과 북의 당시 정치 현실을 비판하고 있다. 즉, 남한에는 타락과 방종에 가까운 자유와 밀실만이, 북한은 이데올로기를 빙자한 무자유와 신념 없는 광장만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렇듯이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 또는 관념은 '밀실'과 '광장'이다. 그러나 '광장'이나 '밀실'이란 말이 의미하는 바는 다양하여 다소 모호하게 여겨지는 경우도 있다. '광장'의 의미만 보더라도 그것이 인간적인 만남의 의미를 가지는 경우도 있고, 닫힌 사회로서의 '밀실'에 대립하는 열린 사회라는 의미로 해석되는 경우도 있다. 대체적으로 '광장'은 사회적 삶의 공간을 의미하며, 이에 비해 '밀실'은 자신만의 내밀한 삶의 공간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주인공 명준은 철학도로서 자신의 밀실에 들어앉아 현실을 관념적으로 편협하게 인식하고 있었던 인물이다. 그는 밀실에서 벗어나 새로운 광장을 찾아 월북을 하게 되는데, 그곳에서도 진정한 삶의 광장을 찾지 못한다. 그 광장에서 절망한 후 은혜라는 여인과의 밀실을 기도하게 되고 다시

최인훈 <광장> -2-


전쟁이라는 광장으로 나아가지만 또 다른 밀실인 중립국을 택하게 된다. 남북 어느 쪽의 이념도 선택할 수 없었던 그였기에 중립국은 이념이 배제된 밀실이며, 그가 최후로 선택한 바다는 그만을 위한 광장이자 동시에 밀실의 의미를 가진다.

  광장과 밀실이 단절되어 있는 남북한의 현실 속에서 방황하던 주인공은 6·25 전쟁이라는 광장을 거쳐, 또 다른 밀실인 중립국을 선택하지만, 결말에서 주인공의 자살을 통해 이데올로기 선택의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음을 극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와 같이 지은이는 이러한 광장과 밀실이 서로 넘나들 수 있을 때, 인간적인 삶이 보장되리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진실로 인간적인 사회란 어떤 것인지에 대한 물음을 제기하고 있다.


  또한, 이 소설에서 '바다'는 여성을 상징하는 원형 상징어로 쓰이고 있다. 이명준이 바다에 빠져 자살하는 것을 '은혜와 그 아기에 대한 사랑의 희구'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주인공은 인간중심주의적인 삶을 살다가 좌절한다. 그리고 자신의 몸을 바다에 던짐으로써 사랑을 구한다. 여기서 자살은 가치 있는 삶의 성취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어떤 시대적 상황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인간성이나 정당한 삶의 조건을 상실당한 인물들이 결국은 새로운 삶을 영위해 나가는 구조를 지닌 작품을 '상실과 되찾음의 이야기 구조'라 한다. 이러한 구조는 분단 문학에 자주 등장한다.


  결국, 분단 이후 최초로 남과 북을 동시에 무대로 삼아 객관적인 입장에서 비판한 이 작품은 문학사에 있어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분단이라는 비극적 현실과 그것에 맞서는 사랑과 자유의 가치 생생하게 증언하였다. 특히 ‘광장’과 ‘밀실’이라는 단어로 남북 양 체제를 은유적으로 표현해 내고 있다.



◉ 등장인물 ◉

(1) 이명준 : 주인공. 남한과 북한을 오가면서 남한의 나태와 방종, 북한의 부자연스러운 이념적 구속에 환멸을 느끼고 진정한 '광장'을 찾아가기로 하지만, 결국 삶의 참된 가치의 실현에 의문을 느끼고 바다로 투신자살함.

(2) 이형도 : 명준의 부친. 남로당원으로 월북하여 북한에서 고위 관리를 하고 있지만, 명준에게 이상적 혁명가의 모습을 보이지 못함으로써 역시 회의의 대상이 됨.

(3) 윤애 : 명준의 남쪽 애인. 여대생. 명준의 월북 후 명준의 친구인 태식과 결혼하여 평범하게 사는 여인임

(4) 은혜 : 명준의 북쪽 애인. 발레리나에서 간호 장교로 종군(從軍)함. 명준의 삶에 어떤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었던 여인임. 북한 간호 장교로 종군하다가 명준의 아이를 가진 채 전사함.


최인훈 <광장> -3-


 ▦ 내용 고갱이 ▦ 

1. 갈래 : 장편 소설, 사회소설, 분단소설.

☞ 1960년에 처음 중편 소설로 발표되어 이후 여러 차례의 개작을 통하여 장편 소설로 완성된, 남북 분단으로 인한 민족의 고통을 인간의 근원적 삶의 문제와 결부시켜 그것에 대한 철학적 해명을 시도한 작품이다.

2. 성격 : 관념적, 철학적 경향←최인훈 소설의 특색인 철학, 사회학 용어의 빈번한 사용.

3. 배경 : 중립국으로 가는 배인 타고르호에서 주인공이 회상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시간적인 배경은 우리 민족의 혼란기에 속하는 해방으로부터 종전에 이르는 시기이며, 남과 북이라는 배경은 이데올로기(이념)의 실상과 허상을 밝히기 위한 장치로 이용되고 있다.

󰠆󰠏중립국(인도)으로 가는 배 ‘타고르호’에서 명준이 과거를 회상하는 형식(이틀간).

󰠐 ->실제의 시간과 공간.

󰠌󰠏우리 민족의 혼란기인 광복으로부터 6·25 종전(終戰)에 이르는 시기의 남한과 북한. ->회상의 시간, 공간(←역순행적 구성).

4. 남북한 사회에 대한 이명준의 비판

󰠆󰠏남한 : 자유[←부정적 측면(나태, 타락, 방종에 가까움)]->사회적 삶의 공간이 없음.

󰠐                  ↕ 대비

󰠌󰠏북한 : 부자유[←이념적 허상(이데올로기 빙자)]->개성적 삶이 없음.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가를 묻고 규명해 가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이러한 두 사회에 대한 비판은 그가 찾고자 한 것을 찾지 못하는 상실감을 표현한 것임.

=>제3국 선택(전쟁의 비리 속에서 조국, 이데올로기, 사랑, 실존의 회의).

모든 과거를 단절하려는 의지 감행. 투신자살.

4.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이데올로기로 인한 명준의 고뇌를 그의 내부 심리 묘사와 그를 둘러싼 상황 묘사를 통해 사실적으로 제시함). 

5. 제재 : 남북 분단과 한국 전쟁.

6. 표현상의 특징

(1) 전체적으로 회상 형식의 형식을 도입함.

(2) 철학, 사회학 용어의 빈번한 사용으로 다소 난해한 느낌을 줌.

(3) 부분적으로 의식의 흐름(내면 의식) 수법 사용함.

7. 출전 : <새벽> (1960. 10). 


 ◎ 구성 돋보기 ◎

[발단] 월북한 아버지 때문에 고초를 겪다가 명준도 월북함.

[전개] 북쪽 사회의 부자유와 이념의 허상에 환멸을 느낌.

[위기] 인민군으로 종군하다가 포로가 됨.

[절정] 포로 석방 때 제3국을 선택함.

[결말] 타고르호(號)에서 바다로 투신함.

최인훈 <광장> -4-


 ▣ 어휘 깁고 더하기 ▣

 

*황황(遑遑)히 : (마음이 급하여) 허둥지둥하며 어찌할 바를 모름.

*“값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도 행동할 수 있어.”

: 가치 있는 것을 지키기 위해 행동하기도 하지만 그 가치를 만들어 내기 위해 행동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태식은 명준보다 더 적극적인 삶의 태도를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신파 : ‘신파 연극’의 준말로, *창극(唱劇)과 *신극(新劇)의 과도기적인 연극을 말한다.

      주로 남녀간의 애정, 세상 풍속, 인정 비화 등을 다루었는데 극단적인 상황 설정이나  감정의 과장 등이 사실성이 떨어진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창극(唱:劇) : 우리나라 구극(舊劇)의 한 가지. 판소리와 창(唱)을 중심으로 극적인 대화로 이루어지는 전통 연극.

 *신극(新劇) : 구극 · 신파극 등의 기성 연극에 대하여, 서구 근대극의 영향을 받아 일어난 새로운 연극을 이르는 말.

*모랄(moral) : 도덕, 윤리.

*그래서 범죄인이 되겠어.~마찬가지 말이야. : 북의 사회에서 적응하기 위하여 자신이 갖고 있는 도덕관념을 버리고 일부러 악하게 행동 해 보려 하는 명준의 태도를 읽을 수 있다.

*윤애와 그 남편 태식을 놓아 준 다음 : 앞의 내용과 연결해 볼 때, 결국 북의 사회에 적응하려던 명준의 행동이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음을 알 수 있다.

*백 사람이 나무뿌리를~쓸 수 있는 슬픈 틀 : 많은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함으로써 부유한 한 사람의 사치품 사용이 가능하다는 모순적이고 비극적인 구조.

*경제학의 추상적인 법칙을,~옮기려 했다 : 공산주의 경제학의 이론을 통해서만 받아들이던 내용(자본가의 착취에 대해 증오해야 한다는 것)을 스스로의 느낌으로 받아들여 행동으로 옮겨 보고자 노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최인훈 <광장> -5-


*이런 모든 것이 알지 못하는 나라에서는~그래서 중립국을 골랐다.

: 이데올로기와 무관한 중립국이 이상적인 나라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야료 : 까닭 없이 트집을 잡고 함부로 떠들어 대는 짓.

*남들이 멋대로 자기를 영웅으로 만들어 버린 게 짜증스러웠다.

: 자기 의사와 관계없이 평가 받는 현실에 대한 부담감.

*바다의 말은 남자답다 : 명확한 이유를 논리적으로는 말하지는 못했지만 자기 감정을 충실히 표현한 늙은 선원의 말은 남자다웠다.

*민숭한 : 울퉁불퉁한 곳이 없이 평평하고 비스듬한.

*호젓했다 : 후미져서 무서움을 느낄 만큼 고요하다. 매우 홀가분하여 쓸쓸하고 외롭다.

*남하고 돌아선, 아무리~그것은 아무래도 약한 자가 숨는 데였다.

: 내밀한 자기만의 장소에 대한 회의적 반성이 드러나 있다.

*은혜가 나타났을 때, 그녀도 굴을 쓰게 해주었다.

: 주인공이 은혜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었음을 알려 주고 있다.

*모든 사람이 장삼이사(張三李四), 그놈이 그놈이다.

: 모든 사람들의 사고는 비슷하다는 뜻.

*광장에서 졌을 때 사람은 동굴로 물러가는 것

: 광장에서 졌다는 것은 이데올로기의 싸움에서 패배했다는 의미이고, 동굴로 물러간다는 것은 이데올로기로부터 차단된 실존적 자기 확인의 세계에로의 몰입을 뜻한다.

*그러나 과연 지지 않는 사람이라는 게 이 세상에 있을까. 사람은 한 번은 진다.

: 이데올로기로부터 차단된 실존적 자기 확인의 어려움.

*공서자 : 같이 사는 사람.

*어룽어룽한 : 점이나 줄이 고르게 무늬지어 어른거리다.

*자기 손을 보았다. 그것은 무엇인가를 더듬고,~배기지 못하는 외로운 놈이었다.

: 광장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믿음과 확신을 포기당하고, 구원이라 믿은 사랑마저도 그의 곁에 있지 않는 중간자의 위치에 서게 된 자신에 대한 회한과 슬픔을 고백하는 대목이다.

*캘커타 : 인도 중부. 갠지즈 강의 지류인 후글리 강에 면한 도시로 인도 굴지의 무역항.

*뱃고리 : 배꼬리. 선미(船尾).

*어질머리 : 현기증.

*뱃간의 문은 활짝 열려 있었으나, 밖으로 향한~문간은 한결같이 컴컴했다.

: 이상적인 사회에 대한 희망이 존재하는 것 같았지만, 그것은 창의 블라인드라는 이데올로기의 장벽에 가로 막히고야마는 절망감의 또 다른 표현이다.

*흰 그림자가 쏜살같이 저만치 날아가는 것이 보인다. 따라가면서 힘껏 병을 던졌다.

: 주인공이 ‘자기를 따라 오던 그림자’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갈매기에 대한 환상으로 불길함을 느끼고 적대심이 폭발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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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 그를 덮친 당돌한 물음이 언뜻 살아났다.

: 어제 저녁 판문점에서 남쪽과 북쪽 중 어느 하나만을 선택해야만 했던 극단적인 상황에 대한 회상으로, 그 어느 쪽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 없었던 명준은 결국 중립국을 선택했었다.

*또 속이 올라왔다. 이를 악물고 쓴 침을 삼켰다. : 주인공이 내면적인 고통에 시달리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마스트(mast) : 돛대.

*약실 : 구식 총의 총통 안에 화약을 재는 부분.

*그의 총구멍에 똑바로 겨눠져 얹혀진 새는 다른 한 마리의 반쯤한 작은 새였다.

: 어린 새였다는 것으로, 결국 은혜의 뱃속에서 자라고 있었을 어린 딸을 연상하게 한다.

*해도(海圖) : 항해할 때 필요한 여러 가지 사항을 그려 넣은 지도.

*컴퍼스 : 나침반. 방위를 측정하는 기구.

*겨냥 : 목표물이 있는 곳의 방향과 거리를 똑바로 잡음.

*바다를 쏠 것인가 : 바다는 사방이 툭 터진 곳이지만, 그것은 어디도 갈 곳이 없다는 상징성도 지닌다.

*한참 보고 있으면, 물살의 움직임이~물거품을 일으키면서, 물이랑을 파헤친다.

: 바다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바다와 사람이 하나가 됨을 느낀다. 자신의 처지가 곧 바다의 망망함과 같다는 점을 암시한 대상과 주체의 동일시 현상이다.

*그의 몸은 칭칭 감아 놓은 밧줄처럼,~세포 알알이 물방울과 어울려 튄다.

: 스크루에 의해 요동치는 물이랑을 바라보다가 마치 명준 자신이 물이랑과 같이 산산이 부서져 퍼져 나가는 듯한 환상에 빠지는 경험이 드러난 구절로 복선에 해당하며, 이명준의 자살 충동을 짐작할 수 있다.

*자꾸 뒤로 뽑아 내는 물이랑 : '물이랑'으로 표현되는 파도의 어지러움과 스러짐은 이 인물의 심리 상태가 착잡함을 함축한다. 그것을 '몸과 물결이 하나가 된다'고 충분히 암시하고 있다.

*크낙한 : ‘크나크다’의 잘못.

*바다의 무게 속에, 가라앉아 버린다.

: 끝남과 시작, 죽음과 탄생의 의미를 함께 지닌다. 여기서 이명준이 바다로 투신하는 행위는 죽음이라는 의미 이외에 새로운 탄생에의 바람으로 볼 수 있다.

*바다의 아물심은 견줄 데 없이 세다.

: 아무리 물이랑을 만들어도 바다가 아무는 힘이 몹시 세기 때문에 곧 평안해진다. 즉 바다는 큰 물이랑을 그대로 삼켜 다시 평평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아물심’은 아무는 힘을 뜻함. 그런데 '그'는 그러지 못하고, 즉 기억과 현실을 모두 아물리지 못하고 있음을 함축하는 말.



최인훈 <광장> -7-


*물결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 놓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 물결이 편안함을 주는 이유는, 배가 지나가고 난 뒤에 다시 원상태로 돌아가는 복원성 때문일 것이다.

*지금 그의 머릿속에는 아무것도 없다.~금방 쓰러져 버릴 것 같다.

: 공허해진 자신의 심상으로 인해 불안해하는 명준의 모습이 형상화된 대목.

*소리가 나지 않는다. 더 힘있게 밟는다.

: 극도로 고조된 명준의 불안감이 드러난 대목.

*복도로 나선다. 복도에도 인기척은 없다.~이 배가 밟아 온 자국이 연필로 그려져 있다. : 짧은 문장의 효과는 문장이 길어질 때 생기는 심리적 여백을 줄이고, 단순한 행동들을 급박하게 서술함으로써 불안정한 인물의 심리를 보여 주기 위한 장치로 볼 수 있다. 이처럼 문체는 개인의 개성을 넘어서서 이야기의 전개와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의자에 걸터앉아서 부채를 쭉 편다.~부채를 접었다 폈다하다가, 스스로 눈을 감는다.

: 접혔다가 퍼지는 부챗살을 보면서 과거의 기억을 이끌어 내고 있다. '부채를 펼치다'와 '기억을 펼치다'의 유사성을 통한 연상 작용이다. 또, 부채에 그려진 그림이 바다와 갈매기를 담고 있다는 것도 현재 주인공의 상황과 유사함을 통하여 겹쳐지고 있다. 물이랑에 심리가 겹쳐지다가, 여기서는 부채에 현재와 과거가 겹쳐진다. 이처럼 사물을 심리 상태에 겹쳐 보이며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것은, 갈등이 다른 인물과의 사이에서 생기지 않고 자기 내부의 심리적 갈등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머릿속으로 허허한 벌판이 끝없이 열리며,~해돋이처럼 차츰 떠올라온다.

: 극도의 불안감에서 지금까지 겪은 삶의 과정을 회상하게 된다. 그것은 이데올로기적인 삶의 과정과 윤애 혹은 은혜와의 사랑에 얽힌 지난날의 회상이다.



*……펼쳐진 부채 : 주인공이 지나온 삶을 돌이켜 보기 시작하는 대목이다. 주인공은 자신의 삶에서의 선택 가능성을 부채의 넓이로 비유하고 있다. 부채 모양 같은, 지금까지의 삶의 역정.

*부채의 끝 넓은 테두리 쪽을, 철학과 학생 이명준이~없는 동물이라고 여기고 있다.

: 과거의 회상으로 월북하기 전의 명준의 모습이 나타나 있다. 아버지의 일로 경찰서에 끌려가기 전의 모습으로 활기차고 여유 있게 보이고, 관념의 세계에서 혼자 방황하고 있는 고독한 청년의 모습이 보인다.

*정치는 경멸하고 있다. 그 경멸이 실은 강한 관심과~나타난 것인 줄은 모르고 있다.

: 제3국인 중립국으로 떠나는 일.

*다음에, 부채의 안쪽 좀더 좁은 너비에, 바다가 보이는 분지가 있다.

: 이명준은 철학도로서의 밀실에서 벗어나 새로운 광장을 찾아 나섰지만 얻은 것은 절망과 회의뿐이었다. 결국, 그가 최후에 선택한 바다는 이념이 배제된 밀실이요. 사랑이라는 참다운 가치를 실현시킬 수 있는 이상적인 광장, 즉 초월적 공간으로서의 광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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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 썩는 냄새가 역한 배안에서 물결이 흔들리다가 깜빡 잠든 사이에,

: 주인공이 북한으로 밀항하던 때를 회상한 구절이다.

*콜호스 : 옛날 소련의 집단 농장.

*구겨진 바바리 코드 속에 시래기처럼~돌아가고 있는 9월의 어느 저녁이 있다.

: 구겨진 코트 속에 시래기 같이 낡고 너절한 심장을 안고 집으로 돌아가던 자신의 과거를 회상한다. 즉 월북 후에도 자부심을 가질 수 없었다는 상징적인 표현. 주인공이 혁명의 열정이 식어버린 북한 사회에 환멸을 느끼고 있음을 표현한 구절.

*사북 : 부챗살이나 가위 다리가 교차하는 부분에 박는 못과 같은 물건.

      가장 중요한 곳의 비유.

*부채의 사북 자리 :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상황(‘극한’을 비유적으로 표현).

                   그래서 명준은 좌우의 이념 대립 상황에서 변증법적 공간인 제3국을 택하게 되는 것이다.

*삶의 광장은 좁아지다 못해 끝내 그의 두 발바닥이 차지하는 넓이가 되고 말았다.

: 이 작품의 제목인 '광장'이 여기서 구체화된다. 삶의 광장은 이제 두 발바닥의 넓이로 좁아졌다는 것이 이 이야기의 심리적 갈등을 통해 구체화된다. 즉 남한도 북한도 선택할 수 없는 명준의 처지.

*새 사람 :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

*바다를 본다. : 소멸과 탄생, 안식과 자유를 상징.

*큰 새와 꼬마 새 : 두 마리의 새의 상징성은 바다가 광장으로 인식되면서 두 마리의 새의 의미가 구체화된다. 애써 과거를 잊으려 하지만 불가능한 것임을 알게 된다. 스스로 선택한 제3국행을 포기하게 되는 이유가 드러난다. 의미->① 항해 중 내내 동행한 의식의 투사물. ② 아픈 과거의 기억을 이끌어 내는 존재(은혜와 딸의 표상). ③ 실패와 절망으로 점철(點綴)된 과거 삶의 흔적. ④ 바다라는 이상 세계를 떠올리게 한 매개체.

 

*그녀들이 마음껏 날아다니는 광장을 명준은 처음 알아본다.

: 주인공이 갈매기들을 은혜와 그 딸로 여기고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부채꼴 사북까지 뒷걸음질친 그는 지금 핑그르 뒤로 돌아선다. 제 정신이 든 눈에 비친 *푸른 광장 : 바다를 가리킨다. 이 곳은 이명준이 이념의 극한 대립에서 시달리다 벗어난 곳으로, 새들이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공간이다. 그리고 그 곳에서 과거 개인의 기억들을 내밀한 공간을 바라보게 된다. 즉 이념이 배제되고, 사랑으로 참다운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공간.

*자기가 무엇에 홀려 있음을 깨닫는다.~한 일을 생각하면, 무엇에 씌웠던 게 틀림없다.

: 자신을 감시하려는 부정적 존재로 느껴졌던 갈매기가 은혜와 딸을 상징하는 존재로 의미가 전환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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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일날 뻔했다 : 갈매기가 자신을 감시하거나 뒤쫓는 부정적 존재가 아니라 죽은 은혜와 딸을 상징하는 것으로 의미 전환이 이루어졌음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큰 새는 은혜이고 작은 바다 새는 그녀가 낳았을지도 모르는 아이, 즉 주인공의 자식을 상징한다. 여기서 새와 사람이 이중으로 넘나드는 겹치기가 이루어지고 있다.

*거울 속에 비친 남자는 활짝 웃고 있다.

: 주인공이 나름대로의 깨달음을 통해 마음의 평안을 얻게 되었다는 것을 암시.

  명준이 진정한 자유를 생각하고 자살을 결심하는 장면임.


*마카오(Macao) : 중국 동남부의 홍콩 건너편에 있는 상업적 항구 도시.

*"석방자가 한 사람 행방불명이 됐습니다."

: 명준의 투신자살을 간접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인간의 삶은 광장과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 명준의 생각이었다. 때문에 그는 중립국을 선택했고, 그 곳에서 보람 있는 삶을 찾고자 했다. 그러나 그가 생각하고 있던 광장은 존재하지 않았고, 이러한 상황에서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죽음이었다.

*"미스터 리 말입니다." : 주인공 이명준이 바다에 투신했다는 사실을 표현한 구절.


*타고르 호는, 흰 페인트로 말쑥하게 칠한~한 사람의 손님을 잃어버린 채

: 이명준의 행방불명된 것으로 선장에게 보고되면서 결말이 이루어진다. 자기 내부의 그 참담한 갈등이 남들에게는 단순히 한 사람이 행방불명된 숫자상의 문제 정도로 인식되고 있음을 압축적으로 표현함으로써 극적 마무리를 이끌어 낸다.

*빼곡이 : '빽빽히' 정도의 뜻을 지닌 사투리.

*남지나 : 중국 남동쪽에 있는 태평양으로 통하는 내해(內海).

*훈(薰)김 : 연기나 김 따위로 말미암아 생기는 훈훈한 기운.

*흰 바다새들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는다.

: '새'는 이 이야기 속에서 이명준의 어두운 과거를 상징하는 것이다. 그 새가 사라졌다는 것은 과거가 사라졌다는 것이고, 그로부터 이명준이 자유로워졌음을 뜻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죽음으로 비로소 얻은 것임에 이 작품의 의미가 담겨 있다.

*마스트에도, 그 언저리 바다에도. 아마, 마카오에서, 다른 데로 가 버린 모양이다.

: 명준이 죽자 새들이 사라진 것은 그의 죽음이 갈매기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는 것임을 보여 주는 상징적 표현이다. 갈매기는 명준에게 있어서 실패와 절망으로 점철된 과거 삶의 한 흔적이다. 자신이 탄 배를 끈질기게 따라다니는 갈매기를 통해, 죽은 딸의 모습을 보았고, 끝내 자유로울 수 없었던 과거의 아픈 기억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달아 죽음을 택한 것으로 해석된다. 다른 의미로는 새가 어디론가 가버렸다는 것은 곧 주인공을 끈질기게 뒤쫓던 어두운 과거 또한 사라졌음을 뜻한다.



최인훈 <광장> -10-


 ◈ 정리하며 끝내기 ◈

1. 구조 유형 : 상실과 되찾음.

           ->정당한 삶의 조건이나 인간성을 상실 당한 인물들이 새로운 삶을 영위해 나가려는 구조.

2. 의의 

(1) 남북 분단 문제를 처음으로 이데올로기의 측면에서 다룬 장편 소설.

☞ 이전의 남북 문제를 다룬 소설들[학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일방적인 남한 이데올로기로서의 우위성의 입장에서 북한의 잔인성과 왜곡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 그침. ‘광장’은 남·북한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객관적인 반성이 나타나 있고, 그 초월의 지향과 상황의 비극성을 드러냄 으로써 분단의 문제를 정신 차원으로 끌어올린 점이 높이 평가됨.

(2) 사회의 문제를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 질문과 결부시킴.



▶ '밀실'과 '광장'의 의미

: '밀실'이란 자신만의 내밀한 삶의 공간이며, '광장'이란 사회적 삶의 공간을 의미한다.

바람직한 인간의 삶이란 이 두 가지 삶의 방식의 상호 관계와 작용 속에 균형을 이루는 것이며 그 과정에서 한 사회의 역사적 조건과 상황을 주체적으로 수용해 나가는 노력이 요구된다. 이 작품에서 명준은 철학도로서의 밀실에서 현실적인 이유를 광장을 찾아 월북하고 광장에서 절망을 한 후 은혜와의 밀실을 기도한다.


▶바다'(푸른 광장)의 상징성

: 바다는 생명의 본향이라는 원형적 심상과 함께 죽음 뒤에 오는 새로운 탄생에의 가능성을 의미한다.


▶'갈매기'의 상징성

① 선상에서 맨 처음 갈매기 : 감시자의 눈길로 불안감을 준다.

② 시간이 흐르면서 갈매기의 인상(상징성) : 명준의 아픈 사랑의 과거를 떠오르게 하는 매개체. 특히 은혜와 그 딸을 상징한다.



☺··· 주제는 바로 ☞

(1) 분단 이데올로기의 갈등 속에서 바람직한 삶과 사회에 대한 추구.

(2) 분단 이데올로기의 대립 속에서 인간의 근원적 존재에 대한 의미 추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