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하 <파편(破片)>
▶ 줄거리
어느 겨울 저녁, 나에게 전보지가 날아들었다. 숙부가 사망했다는 전보였다. 나는 어리둥절하고 혼란스러웠다. 숙부의 장례에 참석하기 위해 회사에 이틀간의 휴가를 신청한 뒤, 같이 가겠다는 아내를 떼어 놓고 눈이 날리는 거리를 지나 밤차로 K시로 향한다. 버스 안에서 양주를 마시며 아내에게도 밝히기를 꺼려하는 가족사의 내력(친일파였던 할아버지, 일본 유학까지 다녀온 엘리트였던 아버지, 그리고 서자(庶子)이기 때문에 갖은 수모를 당하던 숙부)을 떠올리고 숙부의 삶의 편력에 대해 나는 회상에 잠긴다.
해방이 되자 위세를 떨치던 집안이 무너져 내렸다. 아버지는 공비가 되어 좌익 계열에 가담했고 숙부는 군대에 자원입대했다. 어느 날 공비가 출현하여 마을들이 피해를 입고 면 주재소가 불탔는데, 이것이 아버지의 소행이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이에 흥분한 주민들이 어머니를 학대했다. 마침 휴가를 받고 나온 숙부가 어머니를 구해 주었다. 그 후, 숙부는 상이용사가 되어 제대했다. 그러나 미처 꺼내지 못한 가슴 속의 파편을 꺼내기 위해 군 종합 병원에 가서 수술을 하지만 실패한다. 이로 인해서 밝고 낙천적이던 숙부의 얼굴은 어두운 그늘로 뒤덮이게 된다.
회상에서 깨어나 K시에 도착한 나는 어느 식당에서 국밥을 먹은 후 상가(喪家)로 향했다. 을씨년스러울 정도로 썰렁한 상가가 나를 맞이하였고 숙부가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는 말을 숙모로부터 전해 듣는다.
경찰이 와 사체를 검시하고 염하는 과정에서, 숙부의 가슴에 난 흉터를 보고 나는 악몽 같은 과거의 기억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쓴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몇 해 지난 후, 불쑥 찾아온 숙부는 어머니의 묘소에 가 오열하면서 아버지의 기일(忌日)을 가르쳐 주었다. 결국 이 과정을 통해 나는 아버지의 죽음을 알게 되었고 또 그것이 숙부의 가슴에 남은 상처와 관련이 있음을 알았다. 고인의 유언에 따라 화장을 했다. 화장이 끝난 후 숙부의 가슴에 깊숙이 박혀 있던 파편 조각을 손에 쥔 채 나는 심한 자괴(自愧)에 빠진다.
작품 감상의 길라잡이
이 소설은 ‘나’와 숙부의 삶을 통해 이데올로기의 대립과 그로 인한 분단의 상처를 드러낸 작품이다. 주인공 중 한 사람인 숙부는 6·25 전쟁으로 인한 정신적 상처를 안고 평생을 살아가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이에 비해 ‘나’는 이러한 역사적 상처의 기억으로부터 끊임없이 벗어나고자 한다. 화장한 숙부의 시신에서 나온 한 조각의 파편을 바라보며 ‘나’는 자신의 삶의 근원을 이루고 있는 과거의 기억을 부정하고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려고만 애쓴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문득 심한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작품의 결말은 과거의 역사가 현재 우리의 삶의 기반을 이루는 바탕일 수밖에 없으며, 과거의 역사에 대한 진정한 이해와 그것이 남긴 문제점을 해결하려는 노력 없이 현재의 역사는 새롭게 출발할 수 없다는, 현재의 삶과 역사가 맺는 필연적인 관련을 말해 주고 있다.
이동하 <파편> -2-
◉ 등장인물 ◉
(1) 나 : 친일파인 조부와 해방 이후 좌익 운동을 하던 부친을 두었으며, 6·25 전쟁으로 인한 역사적 상처의 기억[집안의 몰락, 부친의 실종, 모친의 봉욕(逢辱) 등]으로부터 끊임없이 벗어나고자 한다.
(2) 숙부 : 서자 출신으로 천성은 낙천적이었으나, 전쟁 이후 침울한 성격으로 변한다. 전쟁 중 파편으로 인해 가슴에 상처를 안은 채 기이한 범법 행위를 저지르며 평생을 살아가던 중 갑작스러운 죽음을 당한다.
▦ 내용 고갱이 ▦
1. 갈래 : 단편 소설, 사실주의 소설.
2. 성격 : 사실적, 회고적.
3. 배경 : 1970년대 어느 겨울의 서울과 K시.
4. 시점 : 1인칭 주인공 시점.
5. 출전 : <한국 문학> (1982. 6.)
◎ 구성 돋보기 ◎
[발단] ‘나’는 숙부의 죽음을 전보를 통해 접하고 장례에 참석하기 위해 고향으로 떠난다.
[전개] 아내에게도 밝히기 꺼려하는 ‘나’의 가족사적 내력과 숙부의 삶의 편력이 소개된다.
[위기] 고향에 온 ‘나’는 숙부의 죽음과 그의 시신의 흉터를 확인하고는 심한 피로감에 빠진다.
[절정] 숙부의 주검을 화장한 후 ‘나’는 그의 기이한 행적들을 떠올리며 그가 평생 동안 과거의 상처로서 간직해 온 가슴의 상처를 생각한다.
[결말] ‘나’는 숙부의 몸에서 나온 파편 조각을 손에 들고 문득 심한 자괴감을 느낀다.
▣ 어휘 깁고 더하기 ▣
*가로로 가지런히 늘어놓은 낱말들은~아내가 현관불을 껐다.
: 갑작스러운 숙부의 죽음이 화자에게 던진 충격을 드러내고 있다. 석간신문을 대하듯 쪽지를 열어 보는 화자의 태도는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나기 직전에 발생하는, 의도하지 않은 무감각의 표현이다. 이러한 장명은 숙부의 죽음을 확인하게 되면서 화자가 받는 섬뜩한 느낌과 대비되어 묘한 긴장감을 순간적으로 갖게 된다.
*무력하게 나는 입을 다물고 말았다. 치약 냄새가 다시 느껴졌다.
: 이 소설에서 ‘치약 냄새’는 여러 번에 걸쳐 언급되면서 하나의 상징성을 획득해 간다. 흔적을 지운다는 것,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물감이 남는다는 것에서, 이 기호가 의지와는 상반된 현실의 어떤 좌절감을 암시할 수 있다는 추측을 해 볼 수 있다.
이동하 <파편> -3-
*이제 내가 장사 치를 것은 한 사내의 시신이 아니라~보일 수는 없다고 나는 생각했다.
: 숙부의 죽음이 화자에게 갖는 의미가 직접적인 서술의 형식으로 제시되고 있다. 화자에게 있어 숙부는 자신의 어둡고 치욕스러운 과거를 환기시키는 존재였기에, 숙부의 죽음은 화자가 과거의 기억과 결별할 수 있는 기회로서 주어진 것이다. 아내가 동행하겠다고 나섰을 때 혼란스러웠던 화자의 감정은 숙부의 죽음의 의미를 깨달음으로 인해 분명한 행동으로 바뀐다.
[발단]
*객쩍은 : 적당한 범위 밖이 되어 요긴하지 않은.
*영어(囹圄) : 죄수를 가두어 두는 곳. 감옥.
*친일(親日)을 한 조부-물론~결코 불행한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친일, 유학, 신식 교육 등으로 표상되는 근대적 가치들 속에서 여전히 서출이라는 봉건적 가치의 굴레에 묶여 자라 온 숙부의 내력이 소개되어 있다. 봉건적 가치 체계가 부과한 벅찬 노동과 가혹한 편견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순응하였지만, 근대적 가치들이 빚어 낸 해방 이후의 이념적 대립이라는 역사적 비극은 그가 개인적으로 초월할 수 없는 불행이었다.
*면종복배(面從腹背) : 표면으로는 복종하는 체하면서, 내심으로는 배반함.
*고샅길 : 촌락의 좁은 골목길.
*아무래도 이 안에 무언가 들어~그는 헐떡이면서 투덜대곤 했다.
: 전쟁을 겪으면서 변화된 숙부의 면모가 드러나 있다. 그의 자폐적 증상은 외부로부터 가해진 충격의 결과인데, 가슴의 흉터는 단지 육체적인 것이 아니라 내면 깊숙한 곳의 상처가 육체화된 것으로 해석해 볼 수 있다. 숙부가 토하는 기침에서 그 뿌리가 몹시 깊은 데 있는 듯한 느낌을 화자가 받은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비롯된 것이다.
*내사 마, 이대로 좋심더. 의사들은~불구 인생이기는 피장파장인기라요······,”
: 다섯 시간에 걸친 수술에도 불구하고 숙부의 가슴속에 감춰진 파편 조각은 적출되지 않는다. 그것은 파편이 단순한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지울 수 없는 내면적인 상처의 기호임을 상징한다. 파편 조각이 제거되더라도 불구 인생을 벗어날 수 없다는 숙부의 자탄은 그 내면적 상처의 깊이를 뚜렷하게 증명하고 있다.
[전개]
*그러면 N읍의 이름은 이 땅에서 영원히 사라질 것이었다.
: 사내들의 대화에 나타난 도시와 농춘의 변화상은 역사적 상처의 흔적을 지워가며 이루어지고 있는 근대화 과정의 한 단면을 드러내고 있다. 화자는 그 변화의 과정 속에서 고향이 피폐화되어 간다는 안타까움을 느끼기보다, 과거의 흔적이 소멸되리라는 긍정적인 기대를 갖고 있다. 그만큼 화자에게 고향과 결부된 그 기억들은 철저히 거부하고 싶은 혐오스러운 어떤 것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동하 <파편> -4-
*이런 것들이 먼지처럼 자욱이 떠올라 내 의식을 몽롱하게 뒤덮었다.
: 숙부의 생애에 덧씌워진 비극적 상흔과 불가해한 의문의 더께로 인해 그의 죽음은 통상적인 슬픔보다도 일종의 피로감을 화자에게 안겨 준다. 그 피로감을 뚫고 숙부의 죽음을 접하기 위해 달려온 여정들이 질주하는 밤차의 환상으로 의식에 떠오른다. 이 대목은 숙부의 죽음에 대한 상념으로부터 다음날의 출상 장면으로 넘어가는 의식적인 전환의 장치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위기]
*설핏한 : 해가 져 밝은 빛이 약한.
*지석(誌石) : 지문(誌文 죽은 사람의 이름과 태어나고 죽은 날, 행적, 무덤의 위치와 좌향(坐 向) 따위를 적은 글)을 적어 무덤 앞에 묻은 돌.
*“자네 아버님 제살랑 오월 중 적당한 날을 택해 모시도록 하소. 가급적이면 중순 이전이 좋겠네.”
: 숙부의 이 발언에서 그가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알고 있음이 판명된다. 그러나 그가 그 죽음의 현장을 목격하기만 한 것인지, 아니면 죽음에 직접 관여된 것인지는 밝혀져 있지 않은데, 이것은 세부적인 언급을 피하고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할 여지를 남겨 둠으로써 보다 극적인 효과를 두드러지게 하기 위한 설정으로 볼 수 있다. 아무튼 숙부는 그러한 죽음과 관련된 처절한 고통의 기억을 가슴에 묻어 둔 채 평생을 살아왔던 것이다.
*그랬다. 옛날과는 생판 모습이~내 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하곤 했던 것이다.
: 숙부의 행동 변화에 아버지의 죽음이 그 계기로서 놓여 있었음을 화자는 뒤늦게나마 깨닫는다. 어딘지 모르게 숙부에게서 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하곤 했던 기억은, 숙부가 아버지의 죽음을 자신의 상처로 내면화한 흔적이 어렴풋하게 화자에게 인식되었던 결과이다.
[절정]
*파편 한 조각 : 아버지의 죽음을 암시하는 삼촌의 말, 제대한 후 완전히 달라져 버린 삼촌에게서 ‘나’가 아버지의 모습을 본 것, 그리고 삼촌이 보인 자학적인 행위 등을 통해 삼촌의 가슴속에 박힌 파편은 아버지의 죽음과 관련된 고통스러운 기억을 상징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나는 문득 심한 자괴(自愧)를 의식했다.
: ‘나’는 쇳조각을 통해 삼촌이 홀로 감당해 온 상처와 고통을 충격적으로 인식하고 과거에서 벗어나려고만 했던 자시 자신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다.
[결말]
☺··· 주제는 바로 ☞ 6·25 전쟁으로 인한 역사적 상처와 그 극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