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나는

[본문스크랩] [소설] 임철우 <사평역>

심자한 2010. 3. 7. 03:57
 

임철우 <사평역(沙平驛)>


 ◆ 줄거리 ◆

  역장은 30분이 지나도 오지 않는 막차를 기다리며 대합실을 둘러본다. 대합실에는 모두 다섯 명이 기다리고 있다. 농부는 눈 오는 날에 병원에 가자는 아버지에게 짜증이 나다가도 죄스러운 마음이 든다. 중년의 사내는 감방에 있었던 허 씨가 생각난다. 청년은 얼마 전 학교에서 제적 처분을 받았다. 서울말을 하는 뚱뚱한 중년 여자와 화장이 짙은 처녀, 행상(行商)을 하는 아낙네 둘이 대합실로 들어왔다. 중년의 사내는 허 씨의 부탁으로 그의 칠순 노모를 찾으러 왔으나 이미 죽은 지 5년이 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뿐이었다. 청년은 집안의 희망이어서 부모와 형제들 앞에서 퇴학당했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춘심이는 청년을 보면서 대학생이란 존재를 부러워한다. 서울에서 음식점을 하는 중년 여자는 주방에서 일하다 없어진 사평댁을 찾으러 왔는데, 사평댁은 남편이 죽어 아이들이 거지 신세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내려왔다고 했다. 중년 여자는 오히려 지니고 있던 돈을 다 주고 온 길이었다. 결국 열차는 두 시간이 지나서야 도착했다.

  대합실에 있던 승객들은 반가움보다는 차라리 피곤함과 허탈감에 젖은 모습으로 열차에 올라탔다. 역장은 열차가 출발할 때 아직 들어가지 않고 열차 난간에 위태로운 자세로 기대어 서 있는 오 씨 아들을 보았다. 역 안에는 미친 여자가 난로 옆에서 자고 있었고, 역장은 톱밥을 더 가져다가 난로에 부어 주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사무실로 돌아가고 있었다.


 󰏊 작품 감상의 길라잡이 󰏊

  이 소설은 곽재구의 시 <사평역에서>를 읽은 작자가, 그 시에서 받은 감동을 기초로 하여 쓴 작품이다. (이 소설에서도 눈 내리는 겨울 시골의 어떤 간이역에 모인 사람들의 기다림과 추억, 막막한 미래가 그려지고 있다.)

  이 소설은 눈 내리는 겨울 밤 시골 간이역 대합실에서 막차를 기다리는 아홉 사람의 쓸쓸한 내면을 그리고 있다. 사평역에서 막차를 기다리는 인물은 해소병자(咳嗽病者)인 노인과 그의 아들, 12년 만에 감옥에서 출감한 중년 사내, 청년과 미친 여자 등 저마다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인물들로, 그러한 인물들의 어둡고 우울한 삶의 양상들은 하얗게 쏟아지는 눈발과 함께 이 소설의 암울한 배경을 잘 형상화하고 있다. 언제 올지 모를 막차를 기다린다는 설정 역시 인물들의 허무한 인생살이를 드러내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인물을 설명하는 방식은 객관적인 묘사와 작자의 주관적인 설명이 함께 어우러진다. 이들은 험한 세상을 살면서 각자의 아픔과 상처를 간직한 인물들로 1970~80년대 우리 사회의 현실을 잘 드러내 주는 인물들이다. 그들이 기차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은 현실에서 고통 받는 민중들이 삶의 희망을 간직하며 사는 모습과 흡사하다. 작가는 소외된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산업화에 대한 비판을 동시에 보여 주면서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삶의 성찰을 독자에게 전하고 있다.

  또한, 이 소설은 동일한 제재의 시와 비교해 보기에 좋다. 동일한 제재가 시와 소설 안에서 각각 어떤 모습으로 형상화되는가에 유의하면서 소설적 상상력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갖도록 한다.

임철우 <사평역> -2-


 ☞ 잠깐! 알아둡시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사평역’은 실재(實在)하지 않는 역이다. 이는 작가가 전남 나주시 남평읍의 남평역(南平驛)을 모델로 해서 창조해 낸 역이라고 한다.


 ◉ 등장인물 ◉

  이 소설에는 특별한 주인공 없이 여러 명의 인물들이 등장하고 있다. 미친 여자, 대학생, 노인과 농부, 춘심이라는 술집 여자와 서울 여자, 그리고 대합실을 관리하는 역장 등이다. 이들의 성격은 분명하게 제시되지 않으며 단지 평면적으로 서술될 뿐이다. 중년 사내는 삶이란 감옥과 같은 폐쇄된 공간에서 언제 올지 모를 희망을 기다리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농부는 일하고 근심하다가 늙고 병들어 죽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서울 여자에게 삶이란 돈이며, 춘심이는 삶에 대해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대학생에게 삶은 세상과 구별할 수 없는 무엇이지만, 그러한 신념도 혼란을 겪고 있다. 행상꾼 아낙네들은 삶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는 것조차 사치일 뿐이다. 작자는 다양한 인간 군상(群像)들을 모아 놓고, 엄습하는 추위 속에서 자신들의 삶이 주는 의미를 반추(反芻)해 보는 시간을 그리고 있다.


(1) 노인 : 해소병자(咳嗽病者)이고 늙은 농부로 가부장으로서의 고집과 권위가 조금은 남아 있으나, 가난과 병으로 인해 매우 초라한 모습으로 비쳐지는 아버지 세대

(2) 노인의 아들 : 평생 농사를 짓고도 가난과 근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삼십대 중반의 농부로 부모의 부담에서 벗어나지 못한 아들 세대

(3) 중년 사내 : 삶의 뿌리를 잃은 돌아갈 곳 없는 전과자로 교도소에서 출감함.

(4) 청년 : 독재 정권 시절 민주화를 요구하며 싸웠던 운동권 대학생으로 젊은 세대.

             대학 제적 처분을 받음.

(5) 뚱뚱이 서울 여자 : 과부이자 음식점 주인. 시골 아낙네들과 얘기하면 자신의 품위가 깎인다고 생각하는 것에서 그녀가 속물근성(俗物根性)을 가졌음을 알 수 있음. 하지만 보기와는 달리 인정이 많고 따뜻한 심성을 갖고 있는 보통 사람

(6) 춘심이 : 산업화의 그늘에서 돈을 벌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몸을 팔 수 밖에 없었던 스물대여섯 정도의 술집 작부. ‘옥자’는 순진한 산골 처녀로 살았던 삶을, ‘춘심이’는 서울 신촌의 닳고 닳은 술집 여자로서의 삶을 의미

(7) 아낙네들 : 행상꾼

(8) 미친 여자 : 역에 끝까지 남음

(9) 역장 : 역을 지키는 마음이 따뜻한 사람

(10) 허 씨 : 이데올로기 대립 속에 평생을 감옥에서 지내는 비전향 장기수. 25년째 수감

(11) 교수와 그의 동료들 : 청년 대학생의 안타까운 처지를 이해는 하나 현실을 받아들이는 수동적인 인물들

(12) 청년의 아버지, 어머니 : 그의 부모는 자신의 삶의 한을 아들을 통해 보상받으려고 하는 부모 세대

(13) 사평댁 : 서울 여자의 음식점에서 주방 일을 함. 가정의 해체로 절망에 빠진 여자

임철우 <사평역> -3-


 ▦ 내용 고갱이 ▦ 

1. 갈래 : 단편 소설

2. 성격 : 서정적, 성찰적, 회상적

3. 배경 : 1970-80년대 눈 내리는 겨울밤, 가상의 시골 간이역(사평역) 대합실

4.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5. 표현상 특징

 (1) 곽재구의 시 <사평역에서>에 소설적 상상력을 동원하여 서사적으로 구성한 것으로 중심인물이 따로 설정되지 않고 아홉 명의 인물군을 통해 그들의 삶의 이력을 보여 주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함.

 (2) 특별히 중심인물을 설정하지 않고, 아홉 사람의 인물을 통해 삶의 내면 풍경과 한국 현대사의 상처를 제시함.

 (3) 이 소설은 일종의 액자식 구성을 지니고 있다. 소설의 사건은 매우 간단하다. 그것은 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며 불을 쬐던 사람들이 역사(驛舍) 안팎의 사물들에 관심을 두다가 기차가 도착하자 그 기차를 타고 떠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간단한 서사적 사건 속에 등장인물들의 회상이 중첩되어 나타난다. 그들의 회상 속에서 과정의 일들이 이야기된다.

6. 출전 : ≪아버지의 땅≫ (1984년)


 ◎ 구성 돋보기 ◎

[발단] 시골 간이역에 대합실에 몇 사람이 기차를 기다리고 있다. 그들은 난로에 몸을 녹이며 각자의 삶을 떠올린다.

[전개] 대합실에 모인 사람들의 사연은 매우 다양하다. 병이 난 아버지와 함께 읍내 병원에 가려는 농부, 난리 후 사상범으로 잡혔다가 출감한 지 며칠 지나지 않은 중년 사내, 시위를 주동하다 제적된 대학생, 서울에서 음식점을 하는 서울 여자, 술집에서 일하는 춘심이 등이 생각에 잠겨 열차를 기다리고 있다.

[절정 · 결말] 그들은 각자의 사연을 가슴에 품은 채 톱밥 난로의 불빛을 바라본다. 두 시간 연착한 막차가 도착한다.

 

 

 

 

[절정]

 

 

 

 

 

 

난롯가에서 

상념에 빠진 사람들

 

 

 

 

새로 등장한 네 여인들

 

 

대합실 안의 다섯 사람들

 

 

 

 

열차를 타고 떠나는 사람들




임철우 <사평역> -4-


 ▣ 어휘 깁고 더하기 ▣

*감방 안에서 사내는 손바닥 안에 움켜쥔 모래알이~안타깝게 저울질을 해 보곤 했었다.

: 앞으로 감방 안엣 갇혀서 허망하게 보내야 하는 시간이, 사내에게는 마치 손바닥 안에 움켜쥔 모래알들이 빠져나가는 것처럼 허망하게 느껴졌다는 것이다.

*망연히 : 넋을 놓고 멍한 상태로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으로 밤이 되면 미친 듯 날아 들어와~수많은 흰 나비 떼들······.

: 어떤 목적도 없이 열정적으로 살다가 결국 허무하게 마감하는 것이 삶이라고 여기는 청년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청년은 아직도 저고리 안주머니에 학생증을 지니고 있긴~기회는 영영 없을지도 모른다.

: 청년이 제적당했음을 암시

*톱밥 난로의 불꽃

: ① ‘사평역’이란 작품 전체적으로 볼 때, ‘난로’는 등장인물들에게 회상과 성찰의 힘을 부여해 주는 계기가 되고, 또한 난로를 말없이 바라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서로 교감을 느끼게끔 한다.

  ② 이 작품에서 청년은 유리창에 반사된 ‘톱밥 난로의 불꽃’의 아름다움을 보면서 상념에 빠져들고 있다. 그리고 이곳으로 오기 전 대학에서 제적당한 일을 떠올리고 무엇이 자신을 친숙한 이름들로부터 단절시키고 있는지 생각한다. 여기에서 ‘톱밥 난로의 불꽃’은 청년이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회상의 매개체이다.

*청년은 불현듯 눈빛을 빛내며 한 발 창 쪽으로 다가서고 있다.

: 유리창에 비친 톱밥 난로의 불꽃은 청년에게는 아름답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 혹은 존재하지 않으므로 아름다운 것이다. 그것은 곧 청년이 추구하는 무엇인가를 의미한다. 이처럼 유리창은 내면의 세계를 비추어 보는 거울이며, 내면의 풍경이 펼쳐지는 화폭이다.

*아우슈비츠의 학살 :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폴란드 남부의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에서 자행되었던 학살. 이곳에서 250만~400만 명의 유대인을 살해한 것으로 추산됨.

*그는 바로 전날 밤, 제적 처분되었다는 사실을 학교로부터 통고받았었다.

: 박정희, 전두환 정권은 정권에 저항하는 학생들을 폭압적으로 탄압했다. 전두환 정권의 경우 이른바 ‘녹화(綠化) 사업’을 벌였는데, 이는 대학 시위를 막기 위해 요주의 학생들을 강제로 군대에 보낸 후 ‘순화’시켜서 휴가 때 대학교에 프락치로 보내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었다. 총 477명이 강제 징집을 당했는데, 이중 6명이 의문사를 당했다. 청년에게 취해진 제적 조치는 이런 것에 비하면 아주 가벼운 것이었다.


☺··· 주제는 바로 ☞ (1) 간이역 대합실에서 나누는 삶에 대한 교감

                            (2) 고립된 개인들의 고통스러운 삶

                               (3) 평범한 인물의 쓸쓸하고 고단한 일상의 삶



임철우 <사평역> -5-


▶ 이 작품의 모태(母胎)가 된 시(詩)


곽재구 <사평역(沙平驛)에서>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 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 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 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 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 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사평역에서≫ (1983)

 

                        

 󰏊 작품 감상의 길라잡이 󰏊

  이 시는 오지 않는 막차를 기다리는 쓸쓸한 기차역 대합실의 정경을 통해서, 설을 맞아 고향으로 돌아가는 가난한 사람들의 고단한 삶과 추억, 아픔을 함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 내용 고갱이 ▦ 

1. 성격 : 애상적, 감각적, 회고적

2. 표현상 특징

 (1) 차가움과 따뜻함의 이미지 대조를 통해 시적 대상을 표현함.

 (2) 간결하고 절제된 어조로 표현함.

3. 제재 : 간이역의 대합실 정경


 ◎ 시의 구성 돋보기 ◎

[1-4행] 대합실의 풍경

[2-8행] 회상에 젖는 모습

[9-16행] 막차를 기다리는 사람들

[17-21행] 눈꽃을 통해 위안받는 사람들

[22-27행] 그리웠던 순간의 회상


☺··· 주제는 바로 ☞ 막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삶의 애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