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나는

[본문스크랩] [소설] 서영은 <먼 그대>

심자한 2010. 3. 7. 03:57
 

서영은 <먼 그대>


◆ 줄거리 ◆

  나이 사십이 다 되어 가는 문자는 아동 도서를 간행하는 H출판사에서 교정 일을 보는, 10년 경력의 말단 사원이다. 노처녀인 그녀는 전혀 시대와 어울리지 않는 남루한 옷차림에 비참하고도 힘든 생활을 하지만, 자신의 생활 속에서는 타인이 발견하지 못하는 기쁨과 행복을 가꾸고 누리며 살아간다.

  한수라는 사내를 알게 되면서 그를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그에겐 이미 처자식이 있음을 알게 되어 결혼을 하지 못하고 그냥 함께 살게 된다. 그녀는 한수의 아이까지 낳게 된다. 그러나 아이는 한수의 본처가 와서 빼앗아 갔다. 사실 한수의 처는 문자와 한수의 살림살이까지 부수어 놓을 작정이었다. 그러나 문자의 방에는 부술 경대도, 화장품도,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아이만 빼앗아 갔다.

  문자는 광산업에 실패한 한수가 자신을 묶어 놓으려고 한수와의 사이에서 낳은 옥조를 데려가도, 들어 사는 집 주인 여자가 억지를 써 가며 집세를 올려 받아도, 남들이 눈치 채지 못하는 자기 맘속의 어떤 그윽하고 힘찬 그 무엇으로써 생활해 나간다. 그러나 한수는 무직자가 된 이후로 문자를 찾아오면 소주나 마시고 거기다가 돈을 요구한다. 문자는 직장의 월급을 모두 털어 주고도 모자라면 빚까지 내어다 준다. 어느 날, 한수가 물주를 만나겠다고 거액의 돈을 요구해 왔을 때도 문자는 돈을 구하러 이모네 집을 찾아갔다.

  이모는 문자에게 좋은 신랑감이 있으니 이번에는 꼭 결혼하기를 강요했다. 그러나 그녀는 묵묵부답이었다. 그녀의 승낙을 받지 못한 이모는 매우 못마땅한 표정으로 돈을 만들어 주었다. 그녀가 이모네에서 돈을 구해 왔을 때 이미 한수는 술에 곯아떨어진 뒤였다. 그러나 문자는 담담한 얼굴로 한수에게 돈을 내어 준다.

  그녀는 혈육마저도 소유의 집념에서 초극되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면서, 또 마음 깊은 곳에 있는 '낙타'를 끌어내어 모든 것을 사랑해야 한다고 여기면서 살아간다. 한수가 끊임없이 요구해 오는 돈을 구해 주면서도 원하면 원하는 만큼 그 물질에 철저한 노예가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이 같은 문자의 말없는 묵묵함은 어떤 상황, 어떤 조건 아래에서도 살아갈 수 있다는 절대 긍정의 자신감에서 기인되는 것이다. 한수의 모질고 험한 행동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것을 그녀에게 한층 더 큰 시련을 주기 위해, 더 높은 곳으로 멀어지는 신의 등불처럼 여긴다.


 󰏊 작품 감상의 길라잡이 󰏊

  이 작품은 세계의 폭력과 삶의 고통 앞에서도 결코 좌절하지 않고 감수함으로써 내면의 성숙과 강인함을 추구하는 여성상을 그린 단편이다. 출판사 교정원으로 사십이 다 되어 가는 노처녀인 ‘문자’와, 본처가 있고 그녀에게 돈만을 요구하는 ‘한수’의 비정상적인 관계를 중심으로 이 둘이 빚는 갈등과 문자의 삶의 방식을 상징적이고 우의적인 수법으로 보여 주고 있다. 한수는 문자에게 고통과 시련만 주는 존재인데, 그럼에도 그녀는 그 모든 것을 금빛으로 물들게 하는 사랑, 즉 어떤 고통도 감수할 수 있는 포용력을 지니고 오로지 더 높은 정신의 경지에 오르고자 함으로써 초월적인 모습을 보인다. 그런 문자의 내면세계를 상징적이며 우의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 바로 사막을 건너는 ‘낙타’의 이미지이다. 이 같은 문자의 태도는 어떤 상황이나 조건에서도 살아갈 수 있다는 절대 긍정의 자신감에서 기인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서영은 <먼 그대> -2-


◉ 등장인물 ◉

(1) 문자 : 십이 되어 가는 H출판사의 노처녀 교정원으로, 한수의 자식을 낳았지만 그마저 빼앗기고 가난과 주위의 냉대에 시달리는 인물. 세계의 폭력 앞에서도 모든 것을 인내하고 정신적으로 성숙을 추구하는 외유내강형 인물.

(2) 한수 : 이미 아내가 있는 유부남으로 문자를 물질적으로 착취하고 정신적으로 구속하는 인물. 광산업에 실패하고 문자에게 돈을 요구함. 속물적이고 타락한 인물의 전형임.


 ▦ 내용 고갱이 ▦ 

1. 갈래 : 단편 소설

2. 시점 :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

3. 표현상 특징

 (1) 자기 세계에 은폐된 채 내면의 삶을 의식적으로 고양하는 여인의 삶을 추적하고 있다.

 (2) ‘낙타’와 ‘사막’을 통해 인물의 내면세계를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4. 출전 : 제7회 이상 문학상 수상작 (1983년)


 ◎ 구성 돋보기 ◎

문자

 

한수

󰠛

 

󰠛

  한수를 비롯한 주위의 시련을 묵묵히 받아들이고 타락한 세계를 초월해 정신적 성숙을 추구함.

  문자에게 계속 돈을 요구하고 그녀를 끊임없이 괴롭힘.

󰠝

 

 

낙타

 

 

󰠛

 

 

문자의 분신

 

 


 ☞ 낙타의 상징성

  흔히 ‘낙타’는 척박한 사막에서 자신의 몸을 환경에 맞게 개조시키면서 생존의 원리를 터득한 강인한 동물로 상징된다. 이 작품에는 그런 낙타의 생태를 문자의 내면세계와 동일시함으로써 주제 의식을 효과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여기에서 ‘낙타’는 상황이 절망적이면 절망적일수록 이를 내면적 의지로 승화시켜 더 높은 경지로 초월하고자 하는 정신주의를 상징한다. 즉 세속적인 고통과 시련이라는 ‘혹 속의 기름’을 내면 의지라는 ‘생명의 물’로 바꾸어 더 높은 정신의 세계에 도달하고자 하는 것이다.


서영은 <먼 그대> -3-


 ▣ 어휘 깁고 더하기 ▣

*한수가 그녀에게 오는 것은 단지 일요일 밤뿐이었지만,

: 두 사람의 관계가 정상적이 아님을 암시함.

*시렁 : 물건을 얹어 놓기 위하여 방이나 마루 벽에 두 개의 긴 나무를 가로질러 선반처럼 만든 것

*그녀의 손길이 닿기만 해도 닿는 것은 무엇이든지 금빛 물이 들었다.

: ① 인물의 심리를 색채 이미지로 나타내어 신비로움을 부여함.

  ② ‘금빛 물’은 한수에 대한 문자의 무조건적인 사랑의 감정을 감각적으로 표현한 것

*그녀의 몸을 만지면서도 잘 익은 과육에서 나는 것과 같은 향기가 자기 손가락에 묻어나는 것도 몰랐다.

: 자신에게 무조건적으로 베푸는 문자와 사랑을 나눌 때에도 아무런 느낌을 갖지 못하는 한수의 무디고 이기적인 성격을 간접적으로 드러냄. 즉 마음이 무디고 이기적이어서 문자의 금빛 사랑을 깨닫지 못함을 간접적으로 보여 줌.

*그녀는 그에게 옷을 입혀 주려고 옷걸이에서 양복을 걷어 내다 그 속주머니에 찔려진 두툼한 돈 뭉치를 보고도 목이 메였고, 보자기에 싸서 아랫목에 묻어 두었던 그의 구두를 꺼내다가 밑창에 새겨진 고급 상표를 보고도 가슴이 미어졌다.

: ① ‘돈 뭉치’와 ‘고급 상표’는 이기적이고 인색한 한수의 성격을 보여 주는 사물이다. 이는 무엇이든 내 주고 상황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문자의 성격과 대조를 이룸.

  ② 문자의 처지와 대조적인 상황을 통해 인물의 이기심을 부각시킴.

*“고통이여, 어서 나를 찔러라. 너의 무자비한 칼날이 나를 갈가리 찢어도 나는 산다.~내게 이런 운명을 마련해 놓고 내가 못 견디어 신음하면 자비를 베풀려고 기다리고 있는 신(神)에게도 나는 멋지게 복수할 거야!”

: 문자가 마음속의 상념을 ‘낙타’라는 상징물을 통해 드러내기 위한 장치로, 어떠한 절망적인 상황에도 굴하지 않고 살 수 있다는 강인한 의지를 직접적으로 토로한 장면이다. 표면적으로는 복수하겠다고 말하지만 이것은 가혹한 운명과 정면으로 맞서겠다는 정신적인 오기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가슴은 이전처럼 미어지지 않았다.

: 문자가 물욕만 강하고 속물인 한수의 본질을 깨닫고 그 상황을 담담하게 받아들임으로써 정신적으로 초월하고자 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다. 즉 한수에 대해 무관심해진 것이 아니라, 어떠한 고통과 시련에도 굴하지 않는 모습을 통해 그를 대하는 태도에는 변함이 없음을 알 수 있다.

*마침내 그녀의 맘속으로부터 그가 가진 모든 것이 무관해졌던 것이다.

: 문자가 이기적인 한수를 사랑하는 괴로움까지 사랑하게 되었음을 의미함.


☺··· 주제는 바로 ☞ 삶의 고통과 정신에 대한 실존적인 생활 의지.